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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고문치사 박종철 열사, 재조명한다[서평] 신성호 교수의 '박종철과 한국민주화'
김철관 대기자  |  33566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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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1  20: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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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밤사이 술을 많이 마셔 갈증이 난다며 물을 여러 컵 마신 뒤 심문시작 30분 만에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며 추궁하자 갑자기 ‘억’하고 쓰러졌다.” -본문 중에서-
 
87년 1월 15일 오후 5시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박종철 서울대 학생의 죽음을 첫 발표했다. 당시 이 발표로 ‘탁 치니 억’이라는 유행어가 생겼고, 박 군의 죽음에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국 민주화의 도화선이 된 87년 1월 15일 서울대 학생 박종철 고문사망사건 이후 6월 1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6.10항쟁 전야제에 참석했다가 체류탄을 맞아 쓰러졌다. 바로 뒷날 6.10항쟁 집회가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19일 후인 6월 29일 군사정권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는 결국 직선제, 김대중 사면 등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바로 6월 항쟁이 승리로 끝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경을 헤맨 이한열 학생은 소생하지 못하고 7월 5일 하늘나라로 간다.
 
박종철 열사 사망사실을 첫 보도한 당시 <중앙일보> 기자인 신성호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펴낸 <박종철과 한국 민주화 특종 1987>(2017년 1월)은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지 30주년에 맞춰 출판했다. 저자는 박종철이란 민주화를 이끈 이름이기도 하지만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슬픈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하기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올해로 30년, 나는 1987년 1월 15일 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을 처음 알게 되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이제는 잊혀져가는 이름, 박종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본문 중에서-
 
1월 고 박종철 열사 물고문 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6.10항쟁 그리고 7월 고 이한열 열사의 사망 사건까지의 숨 가픈 87년 전반의 시간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사건 이전, 85년 김근태 민청년 의장의 고문사건, 86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 등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인권유린 사건은 극에 달했다. 사회정화 사업을 목적으로 국민을 잡아 인권을 유린한 삼청교육대,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입대시킨 녹화사업 등도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이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해 국민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편다. 대표적인 사례가 3S정책이다. 바로 Sex, Sports, Screen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 승리한 미국이 일본을 점령해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쓴 그런 정책과 유사했다.
 
 밤무대가 활성화되고 유흥업소를 24시간 개방하면서 성을 매개로한 산업이 활개를 친다.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프로씨름 등이 활성화되고, 1982년 개봉한 <애마부인> 등 무분별한 에로영화가 극장가를 휩쓴다. 1982년의 경우 극장 개봉작 56편 가운데 35편정도가 에로영화였다.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기 위해 아돌프 히틀러가 말한 “국민을 다스리는 방법은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와 흡사하다.
 
 전두환 정권은 폭압정치, 국민 정치 무관심과 더불어 언론 통폐합, 보도지침 등으로 언론에게 재갈을 물리며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다. 
 
당시 시민들이 “우리에게 가장 정확한 뉴스는 대자보와 카더라 통신이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언론이 정확한 뉴스를 전하지 못한 것을 비꼬는 말로, 학생들은 대학교 게시판에 붙여있는 대자보가 신문과 방송보다 더 정확하다고 했고, 일반 시민들은 소문과 유언비어를 지칭하는 ‘커더라 통신’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6.29 선언을 13일 앞둔 시점인 6월 16일 전두환 대통령은 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 부부동반 청와대 초청 저녁식사 자리에서 언론을 향해 한 마디를 던진다.
 
“언론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 장래를 위한다면 정론을 써야지 삐라를 써서는 안돼요.”-분문 중에서- 
 
이때부터 언론은 더 이상 군사독재정권 편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언론 통폐합, 언론사 보도지침 하달 등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상항에서도 언론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은 박종철 고문 사건을 은폐하려고 여러 수단을 동원했지만, 언론보도를 막지 못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속였던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등도 언론의 역할이 컸다. 이런 해외 사건과 박종철 고문 사건도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박종철 사건이 우리에게 중요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한국의 민주화를 다진 6월 항쟁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두환 정권의 통제(보도지침)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언론들이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진실을 캐기 위한 본격적인 탐사보도에 나선 것이다. 탐사보도는 권력자나 권력집단의 숨겨진 비리를 파헤치는 보도형태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권력의 인권 유린행위에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직접 맞섰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전 대학생 중심의 민주화운동이 시민운동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말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촛불시위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 힘입어 질서 정연히 진행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는 사실이 기억 속에 맴돌았다.
 
한국 민주화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첫 보도한 저자는 만약 보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5공 시절 의문사로 남았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종철 사건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5공 시절의 의문사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 모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민주화는 결국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종철 사건이 한국의 민주화를 최소한 몇 년을 앞당겼다고 본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박종철 사건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한 젊은이의 죽음,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대한민국 민주화는 박종철 사건 전후로 나뉜다 ▲해외사례로 본 박종철 사건의 의의 ▲언론, 민주화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뜨겁고 치열했던 1987년 6월 ▲6.29 선언 우리에게 가져온 것들 등으로 구성됐다.
 
저자 신성호는 서울고와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다. 중앙일보 기자, 사회부장, 수석논설위원 등을 역임했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특종보도로 1987년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위원, 대통령 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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