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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와 윤동주 시인, 고향 절친이었다"[기행 2] 조선민족학교 - 룡정의 대성중학교
김철관 대기자  |  33566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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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7  10: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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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중

 

7월 11일 연길 만원춘식당에서 점심을 마친후버스를 타고 30분정도 가니 룡정시에 있는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옛터에 도착했다폐교될 때까지 70년 전통의 대성중학교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존재했다과거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우리민족만이 다닐 수 있는 민족학교라고 잘 알려져 있다대성중학교는 당시 룡정의 6개 중학교(대성중광명중은진중동흥중영신중광명여중명신여중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말을 썼던 민족학교였다이후 6개 중학교는 길림성립룡정중학교로 합병됐다.

 

학교 교실로 향한 벽면에 룡정시 청소년 애국주의 교육의 기지사립 대성중학교라고 쓴 글귀가 이목을 집중시켰다바로 옆에 룡정시 관광지점 대성중학교 옛터라는 팻말이 있었고옆에 윤동주 시인의 하얀 석상이 존재했다석상에는 별의 시인 윤동주(星的詩人 尹東柱, The Poet of Star Yoon Dong Zhu)라고 기록돼 있었고이곳 윤동주 시비에는 1941년 11월 20일 지은 대표시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죽은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운다

 

   
▲ 윤동주 시인 석상

 

윤동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작가이다중국 만주 기린성(길림성연변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나 명동학교를 수학했고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숭실학교를 다닐 때 첫 시를 발표했다. 1933년 연희전문 2학년 때 소년지에 시를 발표해 정식 문단에 데뷔했다고 역사를 통해 알려졌다.

 

대성중학 실내 복도로 들어서자 룡정중학력사전시관(대성중학이 합병돼 전시관 이름이 룡정중학력사전시관이 됨)이 나왔고 대기하고 있던 40대 여성 안내원이 전시장을 소개했다전시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1920년 2월 4일 세운 룡정 은진중학교 재학시절 윤동주 시인이 친구들과 교복을 입고 촬영한 단체사진이었다그 가운데 고 문익환 목사도 학우들과 함께 서 있었다바로 이들이 룡정 은진중학교를 졸업한 인물들이었다고 윤동주 시인과 고 문익환 목사는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은진중학교를 다니면서 함께 공부한 절친한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문익환 목사(중)과 윤동주 시인(좌)

 

룡정 6개 중학교 중 동흥중학은 1921년 10월 1일 천도교에서 세웠고 북한의 저명인사 이종옥김책 등이 졸업한 곳이었다황해도 해주출신의 교육학자이며 민족영웅인 안중근 의사는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건너와 룡정 선바위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1909년 10월에 우덕순조덕순 등과 함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민족영웅으로서 재판과정에서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으며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기록도 있었다.

 

중국에서 투철한 항일민족 의식을 고취시킨 조선족은 1919년 3.13운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됐다. 1925년 6월 홍범도 총사령관이 인솔한 봉오동 전투와 그해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김좌진 총사령관이 인솔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1940년 8월 25일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사령관 김일성 지휘 하에 매복을 시켜 많은 일본군을 사살한 해룡시 전투 유적지 등의 사진도 전시했다.

 

역사의 변천과 함께 1946년 6월 16일에 룡정에 있던 6개 중학교를 합병해 길림성립룡정중학교가 됐다동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룡정중학교는 현재 현대과학기술실현학교로 지정됐고인민조선족자치주시범중학교의 영예를 안고 민족영재 양성에 진력하고 있다.

 

특히 앞서 밝힌 대로 윤동주 시인은 룡정에서 태어나 룡정중학교(은진중학교)가 키운 한민족으로서 저명한 분이다. 1917년 12월 30일 룡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도시샤 대학 재학 중 항일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1945년 1월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대상으로 이름 모를 주사를 맞고 27살의 나이로 비참하게 옥사했다.

 

전시장은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가 학창시절에 학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전시했다당시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의 유골함을 가져와 생가 룡정 명동촌 고향집 앞마당에서 문익환 목사의 부친인 문재린 목사가 추도식을 집전했다.

 

1943년 윤동주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가 재경도조선인학생민족주의집단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돼 1945년 4월 18일 옥중에서 순국한 항일 독립운동가 송몽규, 1947년 한국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받고 한국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와 이곳 은진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민족교육을 담당한 동생 문동환, 1902년 10월 17일 조선 함북 회령시에 출생해 영화 <아리랑>을 비롯해 자항의식과 사회비판의식이 투철한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고룡정에서 활동을 한 한국 최초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나운규, 1918년 9월 2일 룡정에서 태어나 41년 12월 위만주국 신경법정대를 졸업하고 이후 연변대 총장까지 역임한 박규찬 등 룡정은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 좌로부터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사령관 김일성, 제3방면군 제13련대장 최현, 제14련대장 정치위원 안길이다.  

 

전시장은 항일 투사들의 사진들도 많이 등장했다그중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사령관 김일성3방면군 제13련대장 최현14련대장 정치위원 안길의 사진도 나온다.

 

헤이그로 향하던 광무황제(고종밀사인 리위종리상설리준 등의 이동경로도 엿보였다헤이그 밀사(특사) 3인 중 리준은 1907년 4월 20일 광무황제(고종)에게 특사 신임장과 밀서를 받았고그해 4월 22일 서울에서 출발해 4월 23일 부산에 도착했다부산에서 배로 블라디보스토크 향했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리상설을 만나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리위종을 만났다이들 셋은 이곳에서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907년 6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다.

 

특히 1907년 4월 20일 광무황제가 리준에게 준 특사 신임장 원본도 전시돼 있었고을사늑약 직후 광무황제와 히토 히로부미와의 관계를 풍자한 네덜란드 신문 삽화도 선보였다.

 

삽화는 고종을 새에 비유했고 새 장속에 갇힌 새(고종)를 조롱하고 있는 히토 히로부미의 행동을 풍자했다전시장에는 우리 역사에서 배우지 않았던 룡정 출신 여러 반일 애국지사들의 사진과 약력이 전시 돼 있었다는 사실이다물론 다양한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도 전시해 놓았다이곳 전시장의 모금함에 성의를 표시하고 바로 옆에 있는 윤동주 시인 교실로 향했다.

 

   
▲ 윤동주 교실

 

전시장 바로 옆 항일 시인 윤동주 교실에는 윤 시인에 대한 자료를 전시했다윤동주 시인의 흉상과 책상칠판사진풍금룡정중학교 교가 등이 전시돼 있었다특히 당시 학생들이 교사의 강의를 듣고 있는 사진학교 창립기념 사진과 교실 장작 난로 옆에서 사은회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이날 교실 책상 위에 있는 윤동주 시인 흉상 옆 의자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은 관광객도 엿보였다대성중학교 옛터 바로 옆에 룡정중학교가 있었고대성중학교 옛터는 1988년 5월 27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정부에서 연변조선자치주 중점 문화재보호단위로 됐고, 2014년 10월 25일 룡정시 인민정부에서 비석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전시장과 윤동주 교실을 둘러보고 바로 윤동주 시인의 생가로 향했다현재 연변주의 행정도시가 연길이지만과거 한때 룡정이 연변주의 행정도시이기도 했다룡정은 현재 낙후된 도시이지만 과거 한 때 잘나가던 지역이었다버스로 윤동주 시인의 생가로 향하면서 가이드가 가리킨 곳이 있었다일송정과 해란강이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을 두고 흐린다지난 날 강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우리 민족의 익숙한 노래인 선구자이다원제목은 룡정의 노래였다일송정도 룡정시에 위치해 있다독립군들이 일송정에 모여 조국의 해방을 위해 항일운동을 했던 곳이었다독립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1938년 일본군이 이곳에 와 소나무에 이상한 약을 투입해 병들게 했다이후 정자 일송정이 세워졌고정자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아직도 살아 있다.

 

왠지 윤해영이 작사하고 조두남이 작곡한 일송정과 해란강에 얽힌 선구자라는 노래가 갑자기 부르고 싶어졌다.

 

1930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독립운동가들도 시련에 빠졌다일본의 중국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관동군이 설치됐다이 때 말을 달리고 활을 쏘고조국을 찾겠다고 한 선구자를 기린 노래였다버스를 타고 룡정시를 가로지른 해란강도 멀리서 나마 볼 수 있었다.

 

   
▲ 윤동주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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